상담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당연 상담자는 중립적이어야 하고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가끔은 참 가슴 아프고 그 사연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사연도 그러한 경우 중의 하나이다.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셨고 매일 같이 어머니와 자녀들을 구타했다. 아들은 참다못해 집을 나갔고 노동과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게 되었다. 집을 나간 지 1년 정도는 어머니가 아들을 만났지만, 아들은 만날 때마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있는 어머니를 보고 싶지 않아 거취를 알려주지 않고 잠적해 버렸다. 그래서 여러 해를 만나지 못하고 각자 생활했다. 그러던 중 아들의 친구로부터 아들이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고 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아들은 이미 심한 알코올중독에 조현병까지 앓고 있었다고 한다. 이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니 아버지가 다시 구타하기 시작해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물론 이 어머니도 심신이 약해져 심각한 우울증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악조건 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집을 나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디 이 분뿐이랴! 위의 사례는 아들이 워낙 심각한 상태여서 배우자인 어머니에 대한 설명이 빠졌지만, 내가 만난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우울증은 기본이고 불안하고 짜증이 많으며 예민할 뿐만 아니라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남편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득 차 있으며 매사를 비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많았다. 그리고 대인관계를 회피하고 혼자서 지내는 경우가 많고 가족들끼리도 집안에서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각자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화병으로 항상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며 머리가 자주 아프고 온몸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는 호소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자신도 도대체 그놈의 술이 대체 얼마나 좋은 것이 길래 남편이 그리 마셔대나 하며 본인이 마시기 시작하다가 어처구니없게도 본인이 알코올중독자가 된 경우가 있다.
또한 자녀도 건강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출을 하거나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어 있거나 폭력 등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 중에는 중독자 가족의 자녀인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은 부모같이 살고 싶지 않다며 앞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고 미리 포기하고 방황하는 경우도 많다. 또 어떤 자녀의 경우에는 이 혼란스러운 가정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눈치만 발달하는 경우도 있고, 어린나이에 가장의 역할을 담당해야 해서 그 젊은 시절을 발달단계에 맞게 성장하지 못하고 성인처럼 살게 되어 성인아이라 불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알코올 중독자 배우자나 가족들은 중독자로 하여금 많은 상처를 받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으며 그 결과 신체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정신과적인 증상을 가지게 되는 등 온 가족이 병들어 있고 많은 문제가 있다. 즉, 중독은 온가족을 병들게 하고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가족들은 자신의 건강이나 삶을 먼저 돌보아야 한다. 알코올중독자의 행동에 대하여 일일이 신경쓰지 말고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자녀들에게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 또한, 가족들이 현재 어떠한 상황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집안에만 있기 보다는 밖으로 나아가 많은 사람들과 친교하고 취미생활을 하며 지내야 한다. 교회를 나가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도움이 필요하면 나 자신도 적극적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야 한다. 알코올중독자를 본인 혼자서 치료하거나 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알코올중독 문제가 있어 보이면 곧바로 알코올중독 전문상담가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번 중독이 되면 치유되기가 힘들고 중독자 본인의 의지만으로도 술을 끊을 수 없다. 일단, 인터넷에 국가에서 위탁하여 운영하는 알코올중독전문상담센터인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검색하면 된다. 만약 이 기관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가까운 보건소에 들러서 상담을 받아야 한다. 국가 기관에서는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다. 또한 알코올중독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는 알코올중독자만을 치료해주는 알코올전문병원이 있으니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받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가족들의 경우에는 가족들만의 자조모임이 있다. 자녀들만 모이는 자조모임이 있다. 이러한 모임에 대하여 알고 싶으면 앞서 소개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이 자조모임에 나가면 모두 알코올중독문제로 고통 받는 분들이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집안에 중독자가 있는 경우 온 가족이 병들어 있고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가족들도 전문적인 상담과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기억하고 본인들의 치유에도 많은 관심을 갖기 바란다.
조현섭 교수(총신대학교 중독재활상담학과·강서아이윌센터장)